치매, 시대에 맞게 용어 바뀌어야
<치매, 시대에 맞게 용어 바뀌어야>
#노망 #치매 #인지저하증 #광남일보 #강성휘 #전남사회서비스원
광남시론(3) - 강성휘 전라남도사회서비스원 원장
노망, 치매, 인지저하증
지금은 치매라 하지만 어렸을 적엔 노망이라 했다. 할머니에게 치매가 오자 동네 어른들은 “느그 할매가 노망들었다”고 했다. 노망(老妄), “늙어서 부리는 망령”이란 뜻이니 지금 들으면 욕이나 다름없는 말이지만 그땐 그렇게 불렀다.
세월이 흘러 노망이라는 말은 사라지고 치매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치매(癡呆), “어리석고 미련하다”는 뜻이다. 노화 등으로 기억, 언어, 판단력 같은 인지기능이 저하되는 증상을 치매라는 부정적인 뜻의 단어로 쓰다 보니 편견이 덧씌워져 있다.
실지증, 인지증 등 명칭 변경
치매관리법에선 치매를 “퇴행성 뇌질환 또는 뇌혈관계 질환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후천적인 다발성 장애”로 규정한다. 치매라는 용어는 ‘정신이상(Dementia)’이라는 라틴어 의학용어 어원을 반영해 일본에서 ‘치매(癡呆·어리석다)’라는 한자어로 번역했는데 그것을 우리나라에서 그대로 가져다 의학적 법률적 용어로 사용하는 데서 유래했다.
이와 관련, 치매 용어 사용을 개선한 외국 사례들이 있다. 대만은 2001년 실지증으로, 일본은 2004년 인지증으로 용어를 바꿨다. 홍콩은 2010년, 중국은 2012년 뇌퇴화증으로 바꿨고, 미국의 정신질환 진단기준 매뉴얼인 DSM-5도 2013년부터 ‘주요 신경인지 이상(major vascular neurocognitive disorders)’으로 쓰고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정부의 개정 검토다. 복지부가 2021년 성인 12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43.8%가 치매 용어에 거부감이 든다고 답했다. 대체 용어로는 ‘인지저하증’(31.3%)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안에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행정용어로 치매라는 단어 대신 대체 용어를 확정해 내년부터 새롭게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대체 용어로는 ‘인지증’, ‘인지저하증’, ‘인지병’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의료계, 병명 개정 반대
하지만 의료계가 “치매의 병 특성상 질환의 범위가 넓어 병명 개정을 섣불리 할 수 없다”고 반대하고 나서 우선 행정용어만 개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고 한다.
의학용어로는 치매를 그대로 쓰되 ‘치매안심센터’나 ‘치매안전관리법’ 등 행정용어에서만 대체용어를 쓴다는 것인데 의료계에서 ‘치매’란 용어를 진단명으로 계속 쓴다면 일상생활에서도 용어를 바꾸기 쉽지 않아 결과적으로 보여주기식 행정에 그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우리나라도 병명을 바꾼 사례가 있다. 2011년 정신분열병은 조현병으로, 2014년 간질은 뇌전증으로 바꿨다. 두 사례 모두 관련 학회에서 대체 용어를 공모한 다음 법률 개정을 거쳐 용어를 개정했다. 전염병도 감염병으로 바꿨다. 특정 질환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편견을 없애는 데 용어 개정이 크게 기여했다. 치매에 대한 인식개선과 치매 친화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용어 개정이 꼭 필요하다.
고령화 시대, 치매는 누구나 걸릴 수 있다. 그럼에도 용어가 주는 부정적 의미 때문에 질병의 특징이 지속적으로 왜곡되고, 조기 진단과 치료가 늦어진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17개 전국 광역 지방자치단체 중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 치매 유병율이 가장 높은 전남, 인식개선과 치매 친화적 환경조성을 통해 치매가 있어도 살기 불편하지 않은 전남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