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쓰레기를 미래세대에게 떠넘길 것인가?
진상현(경북대학교 행정학부 교수)
새 아파트로 이사했는데 화장실이 없다면 사람들은 당혹감을 느낄 것이다. 핵쓰레기에 대한 처리계획이 없는 상태에서 진행되었던 핵발전을 '화장실 없는 아파트'로 비유하곤한다. 이는 인류 공통의 무책임이라는 측면에서 더더욱이나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지난 60년 동안 막대한 양의 사용후 핵연료가 누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어떤 국가도 아직까지 처리장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국토 면적이 넓기로 유명한 미국조차 1987년에 부지를 선정한 이래로 논란을 겪다가 오바마 정부 들어 백지화되고 말았다. 세계 1위의 원자력 의존국인 프랑스는 연구개발을 진행하는 수준이며, 영국은 부지 선정 작업을 진행하고있을 뿐이다. 부지를 선정한 스웨덴도 최종확정은 2015년에나 이뤄질 예정이다. 그나마 전세계에서 처리장 건설에 가장 근접한 국가는 핀란드이다. 왜냐하면 2020년부터는 운영에 들어갈 계획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핵쓰레기가 포화되어간다는 자료를 배포하며, 처분장 건설의 시급성을 몇 년 전부터 강조해 오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2011년에 '사용후 핵연료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공론화를 추진했다. 이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인해 지연되었다가 2013년에 공론화위원회를 출범시킨 상태이다. 그렇지만 전 세계 어떤 나라도 갖고 있지 못한 처분장을 한국이 제대로 건설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인류가 제대로 풀지 못한 이 문제를 한국이 해결하려면 적어도 다음의 두가지 만큼은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이다.
첫째, 시민들과 함께 고민하는 제대로 된 공론화를 진행해야 한다. 핀란드와 스웨덴의 사례를 보면, 정부가 일방적으로 사업을 밀어붙이기 보다는 시민들과 함께 끊임없이 고민해 왔다. 반면에 한국의 공론화위원회는 출발 단계에서부터 시민단체들이 탈퇴를 선언하면서 현재 친원자력 인사만으로 구성된 상태이다
시민단체의 문제제기는 공론화 과정에서 당연히 논의될 사항이기 때문에 배제시킬 경우에는 제대로 된 공론화가 이뤄질수 없을 것이다. 정부가 시민단체의 반대 의견 하나 끌어안지 못한다면 사회적 합의는 불가능 할 수밖에 없다.
둘째, 공론화는 현 정부의 임기 내에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근시안적인 사안이 아니다. 왜냐하면 핵쓰레기는 10만 년에서 100만 년까지 차단되어야 하는 위험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간적 범위가 영원에 가까운 대책을 불과 몇 년안에 결정짓겠다는 자세부터 버려야 할 것이다. 만약에 그렇지 못할 경우 한국은 20년이 넘게 논의해 놓고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미국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 2014.4.6 사순 제5주일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