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적 혁신'을 개념화한 미국의 경영학자 클레이턴 크리스턴슨은 한때의 혁신기업이 성공의 관성 때문에 시장을 지키는데 급급해 도태되는 것을 '혁신기업의 딜레마'라고 했다.
2년 전 도전자였고, 성공했던 초선 지방의원들은 이제 수비가 되었다. 멀지 않은 지방선거에서 '파괴적 혁신'으로 살아남을 것인가? 그때도 '행운의 여신'을 기대할 것인가? 아니면 도태될 것인가?
한때 혁신의 아이콘이 당선의 관성에 젖어 뻇지를 지키는데 급급해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민심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민심을 따르지 않은 결과였다. 낙선 직후나 지금이나 일관되게 얘기한다. 주민이 잘 본 것이다. 필자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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