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도가 폐지되어야 하는 이유
1. 가톨릭교회가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살인하지 마라"는 십계명의 다섯 번째 계명은 바로 인간 생명의 존엄함과 소중함을 일깨우는 계명입니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인간은 그분의 피조물 가운데 가장 존귀한 존재이고, 그 생명의 주인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우리 인간의 생명은 창조주에 의해서 거져 주어진 선물이지 자신의 수고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따라서 창조주가 아닌 어느 누구도 인간의 고귀한 생명을 빼앗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삶과 죽음의 영역은 우리 인간이 개입할 수도 없고, 개입해서도 안되는 창조주 고유의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악행을 저지른 자들이라 하더라도 어떠한 형벌이든 범죄자들의 양도할 수 없는 존엄성을 절대로 말살할 수 없다"고 하셨고, 김수환 추기경도 "국가나 다른 어떤 '권위'에 의해서 사형제도가 존속해 오는 현실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죽음의 문화임에 틀림없다"며 사형제도 폐지를 촉구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보복과 응징, 형벌과 처벌이 아니라 화해와 용서와 사랑을 통하여 범죄자들을 깊이 뉘우치게 하며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 태어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생명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사랑일 것입니다.
2. 사형제도는 강력범죄 억제에 효과가 있지 않은가요?
사형집행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사형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필요한 것이 아닌가요?
사형을 선고받는 살인범들은 두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우발적으로 흥분해서 사람을 죽일 때, 그 순간에는 나중에 내가 사형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마음속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혹 그렇더라도 "너 죽고 나 죽자"입니다. 사형제도가 격정 살인을 미리 막지 못합니다. 계획살인의 경우에도 나름 계획을 잘짜서 범행이 발각되지 않으리라는 자신을 가지고 범행을 하므로 역시 사형제도가 범인에게 실질적으로 겁을 주지 못합니다. 국제연합(UN)이나 여러나라 연구결과도 사형이 범죄에 사전 억제력이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3. 형사 사법 절차가 과학적 증거를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었고, 사법부의 3심제도 등이 확립되어 있으니 이제 오판으로 사형을 선고 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 않은가요?
과학이 발달해도 100%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10% 불완전하면 10% 억울한 사형수가 생기는 겁니다. 의사 남편이 치과의사인 아내와 어린 딸을 죽였다는 사건은 1,2,3심을 여러 번 오가며 사형, 무죄, 사형, 무죄, 무죄 판결이 났습니다. 수사관이나 검사, 판사 다 사람입니다. 절대 하느님처럼 진실을 완벽하게 밝혀낼 수 없습니다. 미국에서도 1973년 이후 최근까지 107명의 사형수가 집행 대기 중 새로운 증거가 나와 석방되었습니다. 인혁당 사형수 8명처럼 한 번 죽으면 재심으로 무죄 판결을 받아도 다시 살아 돌아오지 못합니다.
4. 국제연합(UN) 등 전세계적인 흐름이 사형제도폐지라면 언젠가는 폐지하여야 하겠지만 국민여론도 사형존치의 의견이 훨씬 많으니 아직은 시기상조이지 않은가요?
사형제도 같이 생명을 다루는 사안을 국민 다수의 의사에만 의존해서 처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국민 다수가 인신매매나 인종청소에 찬성한다고 해도 그것을 따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도 사형제도를 폐지한 나라들은 보면, 반드시 국민 다수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더 이상 사형제도와 같은 제도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결단을 내린 것이지요. 게다가 아무런 정보 없이 불특정 다수에게 '사형제도 찬반'을 묻는 식의 여론조사에서 찬성 의견이 많았다고 해서 이것이 반드시 국민 다수의 의견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만약 사형제도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주어진 상태에서 토론을 거친 뒤 사형제도의 찬반을 묻는다면 그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요컨데 사형제도폐지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확산시키는 것은 중요하지만 단순히 다수결로 결정될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5. 국민세금으로 사형수들의 의식주를 수십년간 부담한다는 것은 부당하지 않은가요?
생명에 관한 문제를 단순히 '비용' 문제로 환원하는 것은 그 자체로 적절하지 않습니다. 효율성만 따진다면 흉악범들은 즉결처분으로 사형을 시키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일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고 할지라도, 고문도 하지 않고, 재판도 받게 하고, 국선변호사도 선임해 줍니다. 효율성만 생각한다면 이는 모두 불필요한 일일 겁니다. 사형제도가 폐지되면 흉악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교도소에 수감할 비용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비용이고, 그 비용을 이유로 사형제도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성립할 수는 없습니다.
6. 살인 피해 가족들의 입장에서는 가해자를 사형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내 가족이 강력범죄에 희생되었다고 해도 사형제도폐지를 주장할 수 있을까요?
"가해자를 사형시켜서 먼저 돌아가신 가족들이 돌아온다면 제 손으로 사형을 시키겠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니까.....사형시킨다고 저희에게 위로가 되겠습니가?' 어느 피해자 가족의 말입니다. 물론 모든 피해자 가족들의 마음이 같지는 않겠지만, 또한 모든 피해자 가족들의 마음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과 아픔을 알고 있는 피해자 가족들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같은 상처가 생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형수의 가족도 사형을 집행한다면 가족을 잃은 슬픔과 아픔을 겪게 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피해자 가족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가족을 잃은 아픔을 보듬고 보살펴주는 것입니다. 피해자들이 겪는 분노의 감정을 넘어서 치유와 회복을 위해 다양한 돌봄이 필요한 것이지 단순한 보복과 복수가 피해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7. 사형제도폐지 후의 대안이라고 하는 종신형제도 역시 반인권적인 제도라는 문제가 있지 않나요?
사형제도폐지 후의 대안으로 흔히 '절대적 종신형'의 도입을 이야기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감형을 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수감하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흉악범죄자에게는 사형이 아니더라도 매우 강한 형벌이 부과되어야 합니다. 아주 긴 기간 교도소에 수감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절대적 종신형은 범죄자의 재사회화 또는 사회복귀 가능성을 완전히 박탈한다는 점에서, 사형보다 더 심한 반인권적 제도일 수 있습니다. 즉 상당기간 수감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사회복귀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사형제도폐지를 위해서 과도기적으로 절대적 종신형을 도입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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