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의 힘
강성휘 전라남도사회서비스원 원장
2024.7.10.전남매일.
과거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희박했던 시대,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지적질을 할 때 '병신'이라는 말을 쉽게 썼다. 요즘도 영화 등에서 가끔 이런 말을 쓰는 이들을 볼 수 있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이런 말을 쓰나 생각되지만 편견과 관성은 힘이 세다.
장애인복지와 관련해 1981년 처음으로 '심신장애자복지법'을 만들었다. 이후 1989년에 '장애인복지법'으로 법률 이름을 바꿨는데 '놈'이라는 뜻도 들어있는 '장애자'라는 용어가 인권친화적인 '장애인'이라는 단어로 바뀌는데 9년이 걸렸다. 지금은 ‘장애인’이라는 용어가 당연시되지만 그때는 그랬다.
장애인의 신체활동, 가사활동, 사회활동 등 자립생활을 돕는 '장애인 활동지원사' 제도가 있다. 이 '활동지원사'의 이름도 처음엔 장애인 '활동도우미'였다가 이후 '활동보조인'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활동지원사'로 부르고 있다.
'도우미'라는 말이 '돕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순수한 우리말로 뜻도 좋고 취지도 좋았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도우미'라는 단어가 자꾸 '가사도우미'나 '노래방도우미'를 연상시켜 문제가 되었다. '활동보조인'은 '보조인'이라는 단어 때문에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전문성도 없고, 마치 남의 허드렛 일이나 하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일의 본질적 특징과 전문성이 동시에 드러나는 방향에서 새롭게 찾아낸 이름이 지금의 '활동지원사'다.
그런데 장애인 활동 지원의 근거가 되는 장애인활동지원법에서는 '활동지원사'가 여전히 '활동보조인'으로 명시되어 있다. 한번 정해지면 잘 바뀌지 않는 관성이 법에서도 작동되는 결과 '활동보조인'이라는 편견을 초래하는 단어가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전남사회서비스원에서 장애인 의무고용 비율 3.6%를 맞춰야 하는데 쉽지 않다. 사회서비스 시설이나 사업을 전남도 등으로부터 위탁받아 종사자를 채용할 때마다 장애인 우대 조항을 넣어서라도 장애인을 채용하고자 하는데 지원자가 적거나 없는 경우가 많다.
장애인들에게 채용정보가 도달되지 않았거나, 정보는 도달했지만 자격이 되지 않았거나, 경력이 맞지 않는 등의 이유로 응시율이 적을 수도 있는데 어떤 때는 혹시 사회서비스 관련 일들이 장애인에게 어렵거나 부담스러운 일로 보여 그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비장애인만 편견이나 관습에 노출되어 있는 게 아니라 장애인도 편견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서비스원에서 장애인의 이동을 도와주는 광역이동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하는 일이 장애인 등 교통약자로부터 전화를 받고 해당 지역에서 교통약자 이동차량을 탈 수 있도록 연결하는 일이다. 대부분의 콜센터 이용자들이 친절하고 따뜻한데 여기도 가끔 악성 민원인들이 있다. 이들의 말들 중에 반말이나 욕설 등이 있는데 “너희가 누구 덕에 먹고 사는데 이러느냐?”는 식의 봉건적 편견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교통약자를 위한 예산으로 센터를 운영하고, 급여도 제공되는 만큼 상담원 이용자들에게 감사드리고 응대도 잘해야 하지만 마치 봉건시대 주인이 하인을 부리는 듯한 말과 시각으로 일하는 사람을 힐난하는 것 역시 존중이 빠진 편견이다.
어쨌거나 상담 일이 어렵고 민원이 많은 일로 인식되어서인지 광역이동센터에서도 장애인 상담원을 구하기가 어렵다. 응시자가 귀한 것이 꼭 편견이 많아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상담도 사람이 하는 일이고, 거기에도 악성 민원인 보다 따뜻한 친절한 이용자가 절대 다수이니 장애인 누구라도 좀 도전하면 좋겠다.
필자는 장애인 활동지원사 양성교육 중 이론수업 일부에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면 이론수업이 끝나고 바로 이어서 실습교육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실습은 교육생 본인이 실습기관을 찾아서 매칭하고, 10시간 실습을 받으면 그때서야 수료증이 나온다. 그러다 보니 교육생의 실습기관 매칭이 어려워 한 양성기관에서는 올 상반기 이론수업 이수자 중 16%만 실습에 참여하고 나머지 인원은 실습을 진행하지 못하고 대기자로 남아있다고 한다.
교육생 입장에서는 이론수업 받고 바로 실습을 진행해 자격을 취득하고 일자리를 구하기를 바랄텐데 이론과 실습이 연속성이 없어 이론수업만 받고 실습이 늦어져 결과적으로 자격 취득을 포기하거나, 기약없이 대기할 수 밖에 없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우리나라 여러 자격증 제도 중 최근에 만들어진 제도로 요양보호사 와 장애인 활동지원사 제도가 있다. 요양보호사는 2008년부터 시행했고, 활동지원사는 2011년부터 시행한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제도다. 이중 활동지원사는 4-5개월이 걸리는 요양보호사 보다 훨씬 적은 4-5일 교육을 받아 자격을 얻는다. 그래서 혹시 활동지원사는 자격 취득이 쉬운 만큼 일도 쉽고 대충해도 되는 그저 그런 싸구려 일자리라는 편견이 숨어 있어 자격취득 시스템이 이렇게 허술한 것은 아닌지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부분은 시스템 개선 이 필요하다 여겨진다.
아름다운 꽃을 풀로 보면 풀이 아닌 것이 없고, 꽃으로 보면 꽃이 아닌 것이 없다. 보기 나름이기에 관점이 중요하다. 장애인과 관련해 사용되는 단어와 말들, 사업들에서 편견과 차별이 담기지는 않았는지? 인권친화적인지 아닌지 생각하면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치적으로 독재자로 평가받는 전두환 대통령 때인 1981년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을 위한 심신장애자복지법을 제정한지 43년이 되었다. 장애인에 대한 뿌리깊은 편견과 차별을 타파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이들에게 존경과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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