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문위원 위촉장을 박춘복회장님으로부터 받고 있습니다. 옆에는 서미화 목포시의원
저도 한때 시각장애인이었습니다.
1998년 제가 목포시의원으로 처음 당선되기 전에 어떻게 된 일인지 각막염을 심하게 앓았습니다. 계속 몇달을 안과에 다녀도 혼탁현상이 낫지를 않더군요.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오랫동안 치료하면 각막의 혼탁현상이 나을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사실을 잘 모른거죠. 실은 각막염은 나았는데 그 결과 각막 혼탁이 왔고, 이로 인해 한쪽 눈은 거의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사실상의 시각장애인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2009년까지 10년이 넘도록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가족 중 아내에게만 얘기하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생활했습니다. 심지어 부모님에게 조차도요. 아시면 자꾸 물어 볼 것 같고 걱정 끼쳐드리기 싫어서 말입니다.
시각장애인 등록을 할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각막이식을 하면 좋아진다기에 무리해서 시각장애인 등록을 할 필요가 뭐 있나 싶어 그것도 안하고 2009년 12월 서울성모병원에서 각막이식수술을 하기까지 10년 동안 한쪽 시력을 쓰지 못하고 생활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주로 사람 만나는 일인데 그 10년간 사람 만나서 대화하는데도 많이 불편했습니다.
각막 혼탁 현상이 있는 거라서 제 한쪽 눈을 상대방이 자세히 보면 눈에 하얗게 안개가 낀 것처럼 보이거든요. 정말 보기 싫잖아요. 그래서 사람들과 대화 할 때에도 상대방의 눈을 언제나 얼른 보고 시선을 바꾸는 식으로 얘기했습니다. 혹시 내 각막의 상태를 보고 비호감이 되지나 않을까 걱정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눈이 아픈지 9년째 되는 2008년 봄 어느 이른 아침에 후배를 만났는데 길거리에서 저에게 그러는 거예요.
'선배 눈 아픈거야. 눈에 무슨 일 있어요? 하고 물어보는 거예요.
아픈지 9년 만에 제 눈 문제를 처음 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아! 이제 빨리 수술해야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2009년 12월, 눈이 아픈지 10년만에 그리고 각막이식수술을 신청한지 1년 6개월만에 미국 안은행을 거쳐 들어온 어느 고마운 은인의 각막으로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지금 불편함 없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손톱 밑에 가시하나만 밖혀도 죽을 것 같은데 눈이 불편하면 생활하기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저는 운동을 안하는 성격입니다만 예전에 후배들 자꾸 축구하자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거 안했습니다. 실은 못한거죠. 한쪽 눈으로 운동장에서 땀 흘리며 달린다는 것이 참 불안하더군요. 그런데 거절할 때는 눈 얘기 못하고 그냥 얼머부리는 방식으로 거절했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시절이 옛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픈 눈으로 인하여 사회 생활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평생 장애를 가지고 사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바로 시각장애인들입니다. 그리고 이런 분들이 모여 정보도 나누고, 서로 힘이 되는 활동을 하는 모임이 있습니다. 시각장애인협회입니다.
오늘 목포시각장애인협회의 자문위원으로 위촉되었습니다. 형식적으로 자문위원 간판만 걸어 놓는 일이 되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할 작정입니다. 동병상련의 아픔을 겪었기에 더 노력하겠습니다. 박춘복 회장님을 비롯한 30여분의 운영위원님들 계신 곳에서 서미화 목포시의원님과 함께 위촉장을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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